휴대폰 분실 후 (2) 아쉬운 감각의 추억

지선이 집에 있어요?!! 나의 아동기 시절 단짝 친구 지선이. (수년 후, 그녀에게 나는 단짝이 아니었다는 현실과 대면한 가슴아픈 사건이 있었지만 그것은 각설하고…) 90년대 대부분의 가정에는 전화기가 있었지만, 그 시절 아동에게는 전화를 거는 것 보다는 집 앞으로 달려가 문을 두드리는 일이 쉬운 법이다. 나는 지선이네 집을 자주 두드리고, 놀러갔다. 늘 성공했던 것은 아니다. “지선이 집에 없는데.”라는…

휴대폰 분실 후 (1) 누구를 위해 경보는 울리나

스마트폰을 잃어버리진 24시간이 지났다. 버스를 타러 가는 길에 떨어뜨린 것은 확실한데, 누군가 가져가버렸는지 전원이 꺼지고 켜지길 반복한다. 3년 가까이 사용한 샤오미 포코폰 1세대 폰. 가성비에 만족하며 사용하던 기계라 아쉬운 것은 없는데, 일상 생활이 참으로 곤란해졌다. 모든 인증의 마지막 열쇠: 본인명의 휴대폰 나름 보안이나 개인 정보에 대해 보수적인 편이라고 생각했지만, 이미 얼마나 많은 정보를 ‘편의성’을 명분으로…

애써 찾지 않기로 했다.

나의 상태를 문제로 진단했던 사람들, 나를 답답해하는 이들, 자신들이 원하는 상태로의 변화를 촉구하는 사람들에게 내가 왜 그런지(그렇게 행동하는지, 혹은 그렇게 행동하지 못하는지)를 이해시키기 위해 애써 그 이유를 찾고 설명하려고 애를 썼다. 그런 노력을 시작한지 약 20년동안 부단히 스스로도 찾으려 했고, 나름의 단단한 이론도 구축시켜보고, 공감 비슷한 것에 도달하는 것에 성공하기도 했다. 그러나 결국 알게 된…

‘습(習)’하는 삶

이 글은 박연습, 황집중, 정수련이 운영하는 매거진 단련일기에 초청받아 작성하게 된 글이다. 단련’일기’를 요청하셨지만, 어쩐지 남의 일기장에 일기를 쓰는 이상한 느낌이라, 나는 그들에게 편지를 쓰기로 했다. ‘습(習)’의 삶 제가 경험해온 삶의 모든 측면은 ‘학습’이라는 한 단어로 응축할 수 있는 것 같습니다. 제게 ‘학습’은 12년 의무교육을 받는 동안 혐오하게 된 단어였습니다. 그러나 스무 살 대학 첫 학기 전공 수업에서 그 의미가 갱신된 이후, 매우 좋아하는 단어가 되었습니다. ‘배우고(學) 익히다(習).’ 즉, 지식을 아는 것(어떤 것의 원리를 이성적으로 깨닫는 것)에서 더 나아가, 그 깨달음을 구체적인 삶의 현장에서 반복하는 ‘습’을 하지 못한다면, 그것은 온전한 지식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당시 교수님께서 강조하신 부분은 바로 그 ‘습’ 이었습니다. 세상에는 많은 정보와 지식이 있지만, 정작 그것을 스스로 ‘습’하는 사람들이 무척 적다고 하셨어요. 실제로는 그 ‘습’에서 진정한 배움이 완성되기 때문에 단순히 다양한 지식을 새로이 접하는 시간보다 시행착오하는 지긋지긋한 시간을 견뎌내야 한다고 하셨어요. 그때 그 가르침은 제가 대학과 대학원, 어떤 고급 교육 과정을 통틀어 접한 모든 지식보다 삶을 살아가는데 더 쓸모가 있었습니다. 실제로 지나온 생의 경험에 비추어 봐도 그 개념이 너무나 옳았기 때문입니다. 그러다 보니 가능한 모든 것을 ‘습’의 자세로 나아가려고 애썼던 것 같아요. 특히, 당시는 부모님 보살핌에서 떨어져 나와서 자신을 돌보는 삶을 시작한 시기였기에 더 와닿았던 것 같습니다. 아무리 귀찮고 힘든 일도 억지로라도 ‘습’ – 반복하게 되면, 조금 더 수월해지고 싫었던 일조차 어느 수준에 이르러서는 전혀 거리낌이 없거나 심지어 좋아지는 일도 생겼습니다. 그 대표적인 영역 중 하나가 몸의 ‘움직임’이었습니다. 생존의 습(習): 걷기와 요가 아주 어릴 적부터 그림을 그리기 시작해 예술고등학교 생활을 거쳐왔습니다. 그러다 보니 학교에서 주로 받은 훈련은 ‘오래 앉아있기’입니다. (현재의 교육 현장은 어떤지 몰라도, 90년대에는 “엉덩이가 무거워야 좋은 대학을 간다.”라는 말도 안 되는 정언명령이 존재했답니다) 한창 신체가 성장할 시기에도 운동과 거리가 멀어서, 체력장에서는 늘 최하위 등급이었고, 체육 시간은 늘 고문이었습니다. 예민하고 긴장을 잘하는 성격에 떨어져 가는 자존감만큼 자세도 움츠러들기 시작하고, 그렇게 오랜 시간 지내다 보니, 20대 초에 이미 몸이 굳을 대로 굳어 있었어요. 21살의 어느 날 아침, 몸이 움직이질 않더군요. 그때부터 살기 위해서 지금까지와는 다른 생활 방식을 익혀야 한다는 것을 온몸으로 깨달았습니다.  제가 유일하게 알고 있는 움직임은 ‘걷기’였습니다. 그래서 자취 집에서 학교까지 1시간 남짓 걸어 통학하곤 했습니다. 그렇게 주거지 근처를 산책하는 습관을 만들어가기 시작했어요. 그 습관은 지금까지 잘 이어져서 여행을 가서도 가능한 아침 산책은 하는 편입니다. 단순히 걷는 것 이상으로 무언가 일단 정식으로 배우며(학) 지속(습)할 움직임이 필요하다 여기던 차에 요가를 접하게 되었습니다. 당시 어찌나 몸이 엉망이었던지 어떤 자세도 제대로 할 수 없었고, 가만히 서 있는 산 자세(타다아사나) 조차 힘들었습니다. 호흡(프라야나마)도 알지 못하던 때이니 당연했겠죠. 첫해는 수련 때마다 속으로 욕설을 수없이 내뱉었습니다. 숨쉬기에서부터 찬찬히 요가의 맛을 알아가고, 1년, 2년… 제 몸이 달라져 가는 것을 체험하며 요가를 사랑하게 되었습니다. 매일의 ‘습’을 통해 동작에 대한 감각이 익숙해지니 그와 연관해서 더 깊이 있는 또 다른 ‘학’을 찾아가게 되었습니다. 작업 중인 만화 <우리집 지희씨> 12화: 새벽산책 중  움직임의…

[묵상] 고통의 분류

이사야서 50:4-51:8 고통을 배우고 그 정체를 알아가는 일이 나에게는 중요했다. 오랫동안 고통과 죄책감 속에서 헤매온 시간이 너무 길었고, 지금도 같은 지점에서 다시 당황하고 빠져나오지 못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늘 그 고통 가운데에서 그것을 어떻게든 해결해보려고 아등바등하였지만,하나님 앞에서 끈질기게 싸워야 할 고통으로부터는 도망가고,무시하고 귀를 닫고 갈길을 가야할 고통은 극복하려고 하고….고통은 당장 해결하기 전에 먼저는 고통 자체를…

[묵상] 도넛은 필링이 좌우한다!

잠언 6:20-35 소설가 김연수씨의 산문집 ⟪청춘의 문장들⟫에서 가장 인상적이었던 것은 서문이었다.(그렇다고 서문까지만 읽진 않았다) 그는 과거 자신을 가운데 구멍이 있는 도넛이라고 묘사했다. 비유의 종목이 빵이라서 더욱 공감이 갔던 것은 사실이지만, 그 구멍난 존재로서의 갈증에 대한 그의 솔직한 고백이 오래도록 뇌리에 박혔다. 흥미롭게도, 그 이후로 그런 갈증하는 존재 —이를테면 앙꼬없는 찐빵이라던가(또 빵이네) —로서 어찌할 바 모르는…

[묵상] 희망의 역청을 바르며

출애굽기 2:1-10(1) 레위 가문의 숨겨졌다 갈대 상자에 떠나보내진 아기(2) 아기를 구조한 이집트 공주에게 고용된 아기 엄마(3) 이름을 모세라 짓고, 공주의 아들로 양자 삼다. 하나님의 전지적 개입 – 사람의 마음 예전에는 인식하지 못했는데 성경을 계속 읽다보면, 지문地文 같은 기능을 하는 구절들을 더 많이 발견하게 된다. 룻기처럼 하나님이 직접적으로 노출되지 않는 책에서는 역설적으로 분명하게 하나님의 전지적인 시점과…

[묵상] 히브리 산파의 시민성

출애굽기 1:1-22 (1) 이집트 체류 400년, 번성하는 이스라엘 자손과 위협을 느끼는 이집트왕(2) 산아제한과 노역으로 핍박받는 이스라엘 자손(3)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히브리 산파들의 저항과 하나님의 은혜 투표: 무엇을 위한 시민의 권리행사인가? 오늘 서울과 부산에서는 시장의 공석을 채우는 선거가 있다. 부산을 고향으로 둔 서울 시민으로서 보궐선거를 하게 된 경위도 착잡할 뿐더러, 지난주부터 공약과 후보 토론을 보는 마음은 어느…

[묵상] 기도는 뽕이 아니다

누가복음 22:39-53 (1) 시험에 빠지지 않도록 기도하시는 예수님, 슬픔에 지쳐 잠든 제자들(2) 예수님을 잡으러온 자들에게 칼을 휘두르는 제자들, 다친 종을 치유하시는 예수님 짓눌린 마음 몇주간 갖가지 일들로 마음이 짓눌렸다. 남자친구와 이별을 선언하기도 했고, 내가 잘 서가는 과정과 반비례하게 부모님의 걱정과 두려움이 깊어져만 가는 모습에 내 마음도 오름과 내림을 반복했다. 엎치락뒤치락 롤러코스터를 넘어가던 지난 목요일의 묵상…

[묵상] 성실한 체질

누가복음 22:1-13(1) 반예수파와 가룟 유다의 거래(2) 베드로와 요한을 보내 유월절을 준비하시는 예수님 악마가 생각하는 좋은 거래처의 조건 사악한 일을 도모하는 상황을 일컬어 ‘악마와 손을 잡았다.’라는 표현을 사용한다. 누가복음 22장의 이야기에 등장하는 가룟 유다와 악마의 거래는 단순히 자신의 이익을 넘어서서 순수한 악과 맞닿아 있을 때 성사된다는 것을 보여준다. 사탄은 자신의 목적과 인간의 자기중심적인 욕망이 부합할 때…

[묵상] 주님인가 선생인가

누가복음 19:28-48 (1) 예루살렘 입성, 새끼 나귀를 요청하시는 예수님(2) 바리새파 사람의 반응과 타락한 도성에 애통하신 예수님(3) 성전을 정화하시고 날마다 가르치시는 예수님 퀴리오스 예수 예수님은 열 므나의 비유를 마치시고 앞장서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셨다. 그리고 제자들에게 자신의 입성을 위한 새끼 나귀를 구해오라고 하시면서 스스로 ‘주님’이라 일컬으신다. (31절) 그리고 제자들은 예수님이 알려주신 그대로, “주님께서 그것을 필요로 하십니다.”(34절)라고 말하며 새끼…

[묵상] 입김보다 가벼운 것을…

시편 62 (1) 시인을 무너뜨리려고 하는 사람들의 공격 속에서 반석되시는 하나님께 간구하다 (2) 인간의 헛된 힘과 가치에 두려움도 희망도 찾지 말라 (3) 권세과 사랑은 하나님의 것 확진자 숫자보다 중요한 숫자 근래 부쩍 습관적으로 자주 확인하는 숫자가 있다. 코로나 확진자가 아니라 통장 잔고… 신년부터 수입이 제로인 시기를 보내고 있다. 상반기까지는 버틸 수 있을거라 호기롭게 믿고 있으면서도…

[묵상] 땅 끝에서 부르짖는 노래

땅 끝에 엎드려 있는 사람들 “세상의 끝에 가본 적이 있나요?” 13년 전 즈음, 나는 땅 끝에 있었다. 한 달 동안 아무도 만나지 않고, 생존을 위해 먹을 것을 구하러 외출하는 정도의 최소한의 사회적 접촉만 하고 있었다. (아사할 마음까지는 없었으므로) 나는 사람이 가득한 도시 한가운데 살고 있었지만, 내 시선은 땅 끝을 향하여 바짝 엎드려져 있었기 때문에 내…

[묵상] 어쩌다 개가 되었나

밤마다 짖어 대는 개  길에서 마주치는 수많은 개들은 참 귀여운데, ‘개 같다’ 라는 비유는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강도 높은 욕설이었던 것 같다. 상황이 개 같기도 하고, 사람이 개 같기도 한데, 시편 59편의 개는 나를 죽이려는 의도로 밤마다 승냥이처럼 내 집을 감시하는 원수들을 의미하고 있다. 우리의 인생에도 이런 개 같은 사람들이 한두명은 늘 있었다. 신기하게도 학창시절 모든…

[묵상] 거짓의 농도

거짓은 폭력보다 가볍다? 시편에는 폭력과 불의가 판을 치는 현실에서 억울함과 폭압자에 대한 두려움을 호소하는 시들이 많은데, 불의(injustice)로 규정되는 죄의 내용에는 거의 매번 ‘거짓(lie)’이 등장한다. 죄, 폭력, 불의라는 단어는 무거운 느낌인데, 거짓이라고 하면 어쩐지 상대적으로 가벼운 느낌이다. 일상적이라고 느끼는 것은 그만큼 영향력이 작기 때문일까? 그래서 되려 거대한 폭력이나 죄로 연결된다고 인식하지 못하고 있는 것인가. 거짓의 자기잠식성…

[묵상] 그가 내 벗이라니!

(1) 폭력과 분쟁뿐이다 악담, 분노, 원한이 빗어내는 폭력과 분쟁, 공포과 두려움, 다툼, 고통, 파괴, 억압, 속임수…. 시편 55편은 세상에서 볼 수 있는 거의 모든 형태의 폭력적 행태가 다 등장한다. 각종 폭력이 가득한 곳이 우리가 살아가는 이 땅이고, 그래왔고, 아마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폭력의 역사는 인류의 역사와 맥을 같이 한다. 생물학적 유전자 만큼 오래된 것이 분노라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