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써 찾지 않기로 했다.

나의 상태를 문제로 진단했던 사람들, 나를 답답해하는 이들, 자신들이 원하는 상태로의 변화를 촉구하는 사람들에게 내가 왜 그런지(그렇게 행동하는지, 혹은 그렇게 행동하지 못하는지)를 이해시키기 위해 애써 그 이유를 찾고 설명하려고 애를 썼다. 그런 노력을 시작한지 약 20년동안 부단히 스스로도 찾으려 했고, 나름의 단단한 이론도 구축시켜보고, 공감 비슷한 것에 도달하는 것에 성공하기도 했다.

그러나 결국 알게 된 것은 이유가 없다는 것이다. 더 정확히는, 결코 알 수 없다. 이유가 없는 일에 이유를 찾으려다 보니 공허한 결말에만 도달할 뿐이다. 스스로 합리화하고 있다는 것을 외면해야만, 그렇게 끊임없는 자기배반적인 자살 행태 안에서만 논리적 타당성을 얻을 수 있었다. 그것은 마치 완전무결한 타당성으로 모든 현상을 설명하기 위해 누더기처럼 붙는 애드혹Ad hoc 가설 같다.

더 이상 애써 찾고 싶지 않다. 그리고 나부터 나를 놓아주어야 겠다. 나도 이해할 수 없는 나 자신을 그동안 지나치게 타인에게 변호하기 위해 노력했다. 나는 더이상 나를 변호하지 않겠다. 그리고 심판하지도 않겠다.

스스로에게 변호자와 심판자의 역할을 부여하지 않겠다. 그럴 자격이 없다.
나는 나를 책임질 수 있는 자격이 없다. 전혀…

도대체 왜 이러냐고? 더이상 묻지 마라.
나도 모른다!

[어디갔어 버나뎃]을 다시 보았다. 왜인지 모르지만 이 영화가 다시 보고 싶었다. 가장 좋아하는 장면은 버나뎃이 흥에 겨워 막춤을 추는 장면이지만, 딸 비와 함께 빗속에서 열창하는 이 장면도 정말 좋다. 그녀들이 부르는 노래, “Time after Time”을 우주로 여행한 기간동안 수십번 반복해서 들었다. 먹먹해지면서 다시 살아갈 용기도 나는 노래다. 나는 이런 노래와 이야기가 좋다.

답글 남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