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 입김보다 가벼운 것을…

시편 62

(1) 시인을 무너뜨리려고 하는 사람들의 공격 속에서
반석되시는 하나님께 간구하다

(2) 인간의 헛된 힘과 가치에 두려움도 희망도 찾지 말라

(3) 권세과 사랑은 하나님의 것

확진자 숫자보다 중요한 숫자

근래 부쩍 습관적으로 자주 확인하는 숫자가 있다. 코로나 확진자가 아니라 통장 잔고…
신년부터 수입이 제로인 시기를 보내고 있다. 상반기까지는 버틸 수 있을거라 호기롭게 믿고 있으면서도 지원금과 작년에 진행한 일들의 잔금 회수가 예상보다 늦어지자, 괜히 불안한지 자꾸만 은행 앱을 열어보게 된다. 확인해 보면 별다른 건 없고, 야금야금 줄어드는 숫자이지만 다달이 지불하는 연금이나 자동이체 비용들이 한번에 빠져나간 날이면 불안불안해진다.

올해 상반기 생계비를 염두하면서 작년 하반기에는 후원해오던 여러 단체의 후원금을 끊거나 대폭 줄여야 했는데, 죄송하고 속상하면서도 지출의 20% 이상을 차지하는 각종 후원 비용이 현재 내 처지에 정기성으로 감당하기는 너무 어렵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고 정리할 수 있어서 후련하기도 했다. (최소한 큰 후원단체들은 나보다는 처지가 나아보였다…) 차마 끊을 수 없는 작은 단체들 후원만 남겨둔 상태이고, 나머지는 현재 소속된 교회 공동체의 이웃후원금에 개인적으로 작정한 금액에 한하여 배분한 상태이다. 그런데 당장 써야 할 생활비 통장의 잔고가 예상치 못한 속도로 줄어드는 날이면, 그나마 남아있는 후원 금액마저 고민이 될 때가 있다. 하지만 그럼에도 난 아직 멀쩡히 굶지 않고 있다는 사실을 생각하면, 그러지 못한 사람들을 위해 쓰는 소액의 돈을 내어주지 못하는 것이 바로 내가 부족하지 않은 선까지만 섬기려는 전형적인 위선적 그리스도인이 아닌가 돌아보지 않을 수가 없다. 예수님처럼 십자가에 매달리라고 하신 것도 아닌데, 의식주가 있는 한 나 먹을 것 아주 조금 더 줄이지 못한다는건 말이 안된다…

입김보다 가벼운,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이여…

그럼에도 불구하고, (늘 긴장하게 하는 단어!) 난 어찌나 자주 흔들리고 불안한지…시편62의 시인 다윗의 표현에 따르면 ‘기울어 가는 담, 무너지는 돌담’ 처럼 조금 더 밀면 와르르 무너져 내릴 것만 같다. 환율 관련 뉴스를 보고 잔 어제는 급기야 해외에서 사용하고 남은 외화들을 환전하는 꿈을 꿔버렸다… –;;;(정신분석이 필요없는 늘 투명한 내 꿈) 그 때문에 더 불안해졌는지 생활비 통장 잔고를 확인했는데, 딸랑 3만원이 남아있는게 아닌가…! 무슨 일이지 싶어서 확인해보니 지난달 난방비며 연금 등이 빠져나가버렸다. 아, 꿈에서 하나님이 지혜를 주신거구나 하며 집안의 달러와 유로를 동전까지 삭삭 모아 아침나절 환율 계산을 했다. 아, 오늘은 은행에 가야겠구나.

아무래도 영혼의 무게는 어느 영화제목처럼 21g은 아닌 것 같다. 이리도 자주 작은 일들에 흔들리는 것을 보면, 적어도 내 경우엔 1g에도 못 미칠 것 같은 가벼움이다. 시편 62의 표현에 따르면, 흔들리는 담벼락 정도가 아니고, 사람은 처지가 높든 낮든 동일하게 그 무게가 ‘입김보다, 호흡보다 가볍다.’ 그처럼 가벼운데, 흔들리지 않고 배기겠냐마는… 그래서 흔들리지 않는 반석과 같은 하나님께 의지를 해야한다는 결단과는 다른 한편으로 이 말이 위로가 된다.
“이렇게 가벼운데 무너지면 어떠랴” 하는 생각이 드는 것이다. 그래서 더 가진자가 천국에 들어가기 어렵다고 한 것처럼… 생각해보니 잃을 것도 없구나 싶은, 이상한 편으로 담대함이 생기는 것 같다. 심지어 아무리 장엄한 성벽인들, 하나님의 우주적 차원 앞에서 존재는 모두 입김보다 가볍다는데… 그렇게 가벼우니 넘어져도 큰 충격이 있을까 싶고, 또 세워주시겠지 싶고…

죽어라 공격을 하니

이렇게 가만히만 있어도 존재 자체가 가볍고, 그래서 흔들리고 기울어져 가는 존재들인데… 그런 존재들 서로가 잡아먹지 못해 안달이다. ‘너희가 죽이려고 다 함께 공격하니…’ 하나님 입장에서 딱하기 그지 없다는 안타까운 마음이 드실 것 같다. 다같이 경작하여 즐겁게 나눌 수 있는 먹거리와 열매가 풍성히 있는데, 굳~~~~이 다른 사람 것을 빼앗지 못해 안달인 우리의 세상 속 전쟁터를 보며 하나님은 가슴을 때리신다. 그러니 공격을 당하는 시인 입장에서는 억울하고, 하고 싶지도 않은 싸움에 방어만 해야 할지 그냥 다 내줘야 할지 어찌해야 할지 막막하고 무서워 진다.

흔드는 힘을 무력화시키는 더 큰 힘

가벼운 여진에도 무너질 것은 언제고 무너진다. 그러니 그 힘을 두려워하거나, 남의 것까지 빼앗아서 스스로 강해지려고 하거나, 내가 쌓아놓은 것에 의지하지 말자고 시인은 사람들에게 외친다. 흔들면 흔들리는대로… 다만 더욱 잠잠히 하나님을 기다리고 의지해보라고 시인은 권고한다. 그것이 가능한 이유는 모든 것을 무력화시키는 더 큰 힘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흔들리게 하는 파괴적인 힘, 권력, 심리적 긴장, 관계적 알력, 사회적 여론… 모든 종류의 힘(power)의 원형이 바로 하나님에서 나왔다. 그리고 무엇보다 세상의 권세를 제압하는 하나님의 힘은 모든 것을 포용하는 ‘한결같은 사랑’의 힘이다.

내장에서 쏟아부어 세척되는 영혼

시인은 자신의 깨달음을 공동체에게 공유한다. 그러니 우리가 할 일은 ‘흔들리는 매순간 하나님께 속마음을 털어놓는 것’이라고. 영문에서는 “pour out your hearts”라는 표현으로 번역되어 있는데, 속에 뿌리내린 불안과 괴로움을 아주 깊은 내면에서부터 끌어내 하나님 앞에 토해내라는 강한 표현으로 다가온다. 위세척 정도가 아니라 회음에서부터 온 장기를 다 끄집어 게워내야 할 것만 같다. 그렇게 진실하고 솔직하게 하나님께 털어 놓으며… 일단 영혼부터 아주 깨끗하게 세척해보자. 그렇게 노폐물까지 빼놓고 나면… 내가 너무 깃털처럼 가벼워서 하나님의 거대한 사랑의 무중력 안에서 어떤 힘에도 부서질 염려가 없을 정도로 질량이 낮다는 사실을 깨닫게 해주실거다. 이 세상은, 온우주는 하나님의 자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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