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 희망의 역청을 바르며

출애굽기 2:1-10
(1) 레위 가문의 숨겨졌다 갈대 상자에 떠나보내진 아기
(2) 아기를 구조한 이집트 공주에게 고용된 아기 엄마
(3) 이름을 모세라 짓고, 공주의 아들로 양자 삼다.


하나님의 전지적 개입 – 사람의 마음

예전에는 인식하지 못했는데 성경을 계속 읽다보면, 지문地文 같은 기능을 하는 구절들을 더 많이 발견하게 된다. 룻기처럼 하나님이 직접적으로 노출되지 않는 책에서는 역설적으로 분명하게 하나님의 전지적인 시점과 개입이 드러난다. 출애굽 2장에서는 태어난지 3개월된 동생의 누나에게는 애절한 마음을 주셔서 아기가 담긴 갈대상자가 강에 떠내려가는 것을 멀찍이 지켜보게 하시고,(4절) ‘마침’ 목욕을 하러 나온 이집트 공주에게는 그 히브리 아기가 유독 너무 ‘불쌍해’ 보이도록 하셨다. (애가 너무 잘 생겨보인 것이기도) (5-6절) 이후 출애굽 상황에서는 이집트 왕 바로의 ‘마음을 완악하게 하셨다’라는 구절이 여러번 나온다. 상식적으로 이해가 안 될 정도로 고집이 아주 질기다. 그렇게 강렬하게 사람의 여러가지 마음을 사로잡으셔 사용하신다.

실제로 일상에서 만나는 하나님은 전참시로 만족하지 않으시고 적극적으로 사람의 마음을 통해서 행위하시는 분이라는 것을 세월이 갈수록 경험하게 된다. 특히 사회 생활을 시작하면서 그런 다른 이들의 ‘강렬한 마음’이 나의 여정에 큰 영향을 미쳤다. 돌아보면 상식적으로 나의 가능성을 그렇게 높이 보기 어려운데, 나를 좋아해주고 신뢰하고 실력이 있다고 ‘여겨준’ 마음들이 있었다. 분명 그런 마음이 들도록 하는 개개인의 맥락이라는 것이 존재하지만, 그렇다고 그것이 굳이 나였을 필요는 없었는데 말인다.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그런 타인의 ‘마음’들이 마치 방주(테바)를 타고 강을 따라 막연히 흘러가는 나를 건지기도 하고 강한 바람에 흔들리게도 했다.

반대로 나의 마음을 사용하셔서 다른 이들을 돕게도 하셨다. 나도 내가 싫을 정도로 ‘어찌할 수 없는 강한 마음’ 때문에 괴로울 때가 있다. 너무 가능성이 없어 보이고, 뻔히 내가 괴로워질 것인데, 그래서 해야만 할 것같은 웬수같은 그 놈의 뜨거운 마음…! (아, 바로 왕이 그랬나? 갑자기 이해 됨.) 지인들 중에 상대방의 긍휼로 결혼을 했다는 고백을 하는 분들이 종종 있는데, 격하게 공감이 갔다. (누가 긍휼을 입고 준 자인지는 알 수 없지만)

강으로 떠나보내야 하는 희망

현실에서 접하는 상황은 언제고 최악일 수 있고 그렇지 않더라도 어딘가는 늘 어느 정도의 위험과 거짓이 섞여 있다. 오늘처럼 절망적인 시정을 앞둔 상황에서는 더 암울해 보일 수 있다. 하지만 모세의 어머니 요게벳처럼 하나님은 우리를 그런 곳에 역청과 송진을 바르는 그리스도인으로 부르셨다. 갈대 상자를 방수처리한다는 것은 희망을 가진 자만이 할 수 있는 행위이다. 깨어진 세상 가운데서 최선을 다해 희망을 노래하라 하시고, 그 희망의 기도를 통해 하나님의 역사에 우리가 맞닿을 수 있는 것 같다. 만약 우리가 하나님을 위해 실질적으로 할(do) 수 있는 것이 존재한다면, 그것은 예배 뿐일 것이다.

올해 공동체에서 강조하는 ‘소망하는 예배’라는 슬로건처럼, 마음이 짓눌리지 않고 고개를 들어 함께 소망으로 예배하며 현재 역동하고 계시는 하나님의 움직임을 볼 수 있길 바란다. 개인적인 차원에서도 예전처럼 ‘알 수 없는’ 마음으로 동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이 성령의 소욕에 따르는 것인지 말씀을 통해 세상을 읽는 눈으로 분별하여 ‘확정된’ 마음의 수준에 이르길 바란다.

말씀의 역청, 기도의 송진을 바르며

성경 읽기와 연구는 중대 과제였지만 늘 그래서 부담스럽고 언젠가 ‘제대로’ 해야지 하며 미뤄왔었다. 무슨 인생 역작으로 아껴둔 소재처럼… 그러나 사람들이 품는 꿈처럼, 지금 안하면 영영 안하는 것이더라. 올해는 나름의 성경 읽기와 공부를 해보고 있는데, 여전히 속도는 느리지만 알면 알수록 성경은 실용서라는 것을 깨닫는다. 구약을 통해서 역사도 알지만, 무엇보다 하나님의 마음과 원리를 배우게 된다. 신약에 이르면 현재의 나와 직접적으로 관련된 가장 큰 사건의 의미를 알게 되고, 그래서 지금 내가 여기서 살아가는 방식을 배운다.

현재 당면하고 있는 사건들을 해석하는 것도 어떻게 해야할지 결정하는 일에도 여전히 서툴다. 다행인 것은 하나님이 세세하게 일하고 계시다는 것이다. 나의 엉망진창 어설픈 붓질 위에 손을 얹으시고 큰 방향을 잡아주신다. 그리고 누군가의 뜨거운 마음을 더하여서, 서로의 상황과 마음을 엮어 주실 것이다. 그래서 오늘도 말씀으로 기도로 나의 종이배에 방수 작업을 한다. 오늘도 이 종이배는 침몰하지 않고 항해를 해야 하니깐!!

답글 남기기